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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시는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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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성추문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고은 시인이 출판계에 다시 나타난지 6개월이 지났다. 이승하 시인은 고은의 책을 출판한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사퇴했다. 실천문학사는 충분히 의견을 모으지 못한 채 출간을 감행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면서 실천문학 휴간을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실천문학의 윤한룡 대표는 " 여론의 압력에 출판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뉘앙스를 비쳤다.

 

고은은 이 과정에서도 침묵했다.  

 

복귀 시도는 끈질겼다. 실천문학은 4월초에 판매중단 선언을 스스로 깨고 고은의 신작시집 판매를 시도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자 '일시 품절' 상태로 전환했다.

 

5월에는 또 다른 시도를 한다. 4일부터 19일부터 고은의 입장을 옹호하며 설득할 의도로 만들어진 설문으로 가득한 여론조사를 했다.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조사’라는 제목으로 행해진 설문은 이렇다.

 

개인이나 출판사나 표현의 자유권리를 누리는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지극히 당연한 기본권리... 그런데 이런 당연한 기본권리가 범죄시되고 억압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서 본사는 순수시집의 판매를 중단하고 있으며, 문예지도 잠정 휴간 상태 ...

(설문조사 안내문구)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인가. 정의인가  (설문1)

 

평생 시만 쓰던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 감금당하듯 살았고 모든 명예를 잃은 상태에서 다시 시를 쓰고 시집을 내겠다면 평생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즉, 한 번 죄인이면 영원한 죄인으로 범죄 이전의 범부의 생활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설문2)

 

독재정권의 검열과 여론의 억압을 동일시하도록 유도하거나 출판자유를 억압하는 여론이 폭력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도록 하는 문항도 있다. 프랑스에서 10년 연하 연인에 대한 살인 미수로 2년 복역한 시인 폴 베를린이 추앙받는 것을 고은에게 빗댄 문항도 있다.

 

참고로 폴 베를린은 1800년대 사람이고 지금은 2023년이다. 

 

실천문학은 "징벌의 법칙에 따라 지은 죄에 대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죗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이상의 이중처벌이나 기본권 등을 박탈하는 불법적인 행위는 후진국민성의 발현이다"라는 항목도 포함하였다.

 

고은은 합당한 죗가를 치렀는가에 대한 질문 항목은 없다.

 

고은의 시가 아름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시를 모독한 것은 고은 자신이다. 복합적 존재인 인간은, 주변부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그 자체만을 즐길 정도로 파렴치하기 어렵다. 더구나 아름다운 시를 쓴 당사자가 실은 타인에게 추악했다면?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고은 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가면 김태희가 밭을 갈고 있고, 인도에 가면 노벨 수학상을 받을 만한 천재들이 구걸하고 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과 노력을 착취하여 아름다운 시를 쓰는 정도의 재능은 어쩌면 하늘의 별처럼 많을지도 모른다. 

 

2010년에 출판된 <나의 삶, 나의 시 - 백년이 담긴 오십년 고은>이라는 책을 판매하는 교보문고 온라인 사이트에는 2011년에 쓴 어느 애독자의 리뷰가 있다. 그가 얼마나 고은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모하는지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종교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인은 지금의 일부 개신교 목사들의 행태, 일부 교회들의 더러운 권력 놀음에 대해 “구역질도 아깝다”는 비판을 하셨습니다.

 

애독자의 흠모를 배신한 고은은, 일부 개신교 목사와 자신 가운데 누구에게 더 너그러울까? 

 

고은의 복귀 시도가 한창이던 2023년 5월 경기도의 어느 예술대 교수였던 80대 공연계 원로가 학생에게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입맞춤을 시도하는 등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러 입건됐다. "내 목에 기대봐.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준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