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감싸 안은 행궁동.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매력적인 동네의 주말은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실핏줄처럼 뻗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이내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온다. 바로 그 골목 한편에, '딱따구리 책방'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간이 온기를 발하고 있다. 이곳은 책방이자 카페, 공연장이자 쉼터이며, 이 모든 정체성을 아우르는 싱어송라이터 남수(본명 남수현)의 삶 그 자체다. 그녀는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N잡러'이자, 삶의 모든 순간을 노래로 짓는 예술가로서 이 시대에 꿋꿋한 희망가를 노래하고 있다.
■ 책과 음악, 사람이 만나는 '모두의 공간'
'딱따구리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독립 서적과 함께 동료 뮤지션들의 앨범, 지역 작가들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은 남수 대표에게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이자,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는 활기찬 문화의 장이다. 그녀는 이 공간이 단순히 개인의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모두의 공간'이자 열린 사랑방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녀의 바람처럼 책방은 어느새 행궁동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소중한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 재즈에서 포크로… '진솔함'을 찾아가는 음악 여정
그녀의 음악적 뿌리는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로 시작해 재즈 피아노를 거쳐 재즈 보컬로 이어지는 탄탄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정형화된 길을 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로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를 포크 음악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화려한 기교 대신,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담백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채워진 그녀의 음악이 더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대표곡인 '와산리'는 한 마을을 주제로 의뢰받아 만든 곡으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밝고 정겨운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반면, 2024년에 발표한 '안녕(먼 곳의 그대에게)'는 '이름을 모르는 먼 곳의 그대에게'라는 이름의 전쟁 반대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멀리 있는 이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묵직한 진심을 담아 그녀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 새벽 배달과 뜨거운 주방… 현실은 노래의 자양분
이 낭만적인 공간과 음악 활동을 지탱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노동'이다. 남수 대표는 음악 활동과 책방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야쿠르트 배달, 식당 주방 보조, 대리운전, 택배 배송 등 여러 일을 병행해왔다. 그녀에게 이러한 'N잡'의 삶은 고단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자 과정이다.
그녀는 고된 노동의 순간들이 삶과 예술을 분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며, 오히려 음악의 진솔함을 더하는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땀 흘려 번 돈으로 책방 월세를 내고, 다시 이곳에서 사람들과 음악으로 만나는 모든 과정이 그녀의 예술을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인 셈이다.
■ "모두의 이야기가 연극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그녀의 예술적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계획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이곳 딱따구리 책방에서 매달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자신의 작은 콘서트를 열고, 새로운 싱글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책방 맞은편 가게였던 '시인과 농부'에 빼곡히 남겨진 방명록의 글들을 엮어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평범하지만 진실한 이야기들을 무대 위로 가져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스타디움을 채우는 슈퍼스타는 아닐지라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웃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켜 다시 공동체에 돌려주는 것. 싱어송라이터 남수는 오늘도 수원 행궁동 골목길의 작은 책방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가장 높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