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매년 시행하는 저소득 예술인 전세자금대출 사업이 연 1.95%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올해도 예술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출 승인 전 임대차 계약을 강요하는 '고위험 구조'와 서울 방문 접수만 고수하는 시대착오적 행정 절차 탓에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재단 측은 '찾아가는 지역 설명회'를 개최하며 소통에 나섰지만, 정작 현장의 예술가들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는 보여주기식 행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 빛 좋은 개살구? 1.95%의 유혹과 현실의 괴리
재단의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 사업의 일환인 이 대출은 시중 은행과 비교할 수 없는 낮은 금리와 최대 1억 원이라는 한도로,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인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제도다.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을 보장한다는 정책적 취지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이 빛나는 혜택 뒤에는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 숨어있다. 대출을 신청하기 위한 필수 서류에 '주택임대차계약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예술가 스스로 대출 심사 통과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계약금을 먼저 지불하고 계약을 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계약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을 예술가 개인이 온전히 감수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국내 최대의 예술인 협동조합인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황경하 조직국장은 "조합으로 전세대출 관련 문의는 꾸준히 들어오지만, '계약부터 해야 한다'는 안내에 대부분 포기한다"며 "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예술가에게 계약금을 걸고 도박을 하라는 말과 같다. 복지 제도가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에 가깝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 '서울 중심'의 벽, 소외되는 지방 예술인
여기에 더해 18종에 달하는 서류를 모두 원본으로 구비해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에 위치한 재단 융자상담실에 '직접 방문'해야만 접수가 가능한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온라인 비대면 행정이 표준이 된 시대에 이러한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지방 거주 예술인들의 접근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서울 중심적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의식한 듯 재단은 광주, 춘천, 수원, 대구 등 4개 도시를 순회하는 '찾아가는 지역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며 소통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황경하 국장은 "소통하려는 노력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곪아 터진 환부를 치료하지 않고 겉에 반창고만 붙이는 격"이라며 "설명회에 다녀온 예술가가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은 위험한 계약서와 서울행 KTX 티켓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라고 행사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했다.
◆ 근본적인 '수술'을 요구한다: 안전장치와 접근성 혁신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철저히 공급자(재단)의 행정 편의와 리스크 관리 위주로 설계된 제도 자체에 있다고 진단한다. 수요자(예술가)의 안전과 편의는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없이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안은 명확하다.
첫째, '조건부 사전 승인제(Pre-approval)'의 도입이다. 예술가의 소득, 신용 등 자격 요건을 먼저 심사해 대출 가능 여부와 한도를 사전에 통보해 주는 안전장치다. 이를 통해 예술가는 재단의 보증을 믿고 안심하고 임대차 계약에 나설 수 있다.
둘째, '전면 온라인 신청 시스템'의 구축이다. 서류 제출부터 진행 상황 확인까지 모든 절차를 비대면으로 처리하여 지역적, 물리적 장벽을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 이는 행정 비용 절감 효과와 함께 더 많은 예술가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예술인을 위한 복지는 시혜적인 태도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설계된 합리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재단은 '소통하고 있다'는 명분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뼈아픈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예술가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제도의 '전면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